예수를 믿은 결과는 무엇인가?-형통한 생활

by 관리자 posted Jan 0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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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은 본능적 욕구를 따라 먹고 마시는 일에 치중하며, 세상의 부귀와 영화, 명예와 지위, 권력 등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생존 세상에서의 생존적인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또 사람에게는 본능 외에 본성이 있다. 사람들은 본성 안에 내장된 윤리적 성품을 따라 선한 생각도 하며 이웃에게 선을 베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자신의 선함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들어 있어서 순수하지는 않다. 사람은 지고선의 존재가 아니라 상대선의 존재로, 진선미를 추구하기는 하나 온전히 이루어 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3절과 4절에서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어쨌든 사람은 약육강식의 생존 세상을 살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한다. 자신과 가족이나 소속된 단체를 위해, 또는 국가를 위해 때로는 투쟁을 넘어서 전쟁을 한다. 폭력이 동원되고 술수를 사용하기도 하며 살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한다. 동물들이 사는 사바나 초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완전히 다르다. 생존이 아니라 실존을 누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삶의 형태이다. 우선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지 않는다. 생존 세상에서 생존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마태복음 631절로 33절에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해 주셨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늘 찬양하며, 기도하며 산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하며 산다. 생존은 덤이다.

 

가난과 부요함을 누림

예수님께서는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 아니시다.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오셨다. 그렇다고 생존의 문제를 피해 가시지는 않으셨다. 삶의 현장에서 부족함을 채워주셨다. 잔치집의 부족한 포도주를 채워주셨고, 떡과 물고기로 이적을 베풀어 배고픔을 해결해 주셨다. 또 각종 질병을 고쳐주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시는 목적은 영혼 구원에 있으셨다. 늘 영혼이 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전하시고 실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금식을 하시고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는데, 첫 번째는 돌을 떡이 되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생사에 대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줄 테니 마귀에게 굴복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모두가 생존의 문제였다. 당연히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예수님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영혼의 문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러 오셨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5절과 16절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한다그리스도인은 생존을 누리기 위해 살지 않는다. 생존 안에서 실존 즉 천국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생존의 문제는 덤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먹고 마시는 문제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며 마태복음 6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해답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때, 생존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10절에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그리스도인은 모두 제자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생존을 누리는 사람들이 아닌 것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가난도, 부요함도 함께 누리는 사람들인 것이다.

 

섭리 간섭

예수님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부터 여는 것이었고, 하나님 나라를 누릴, 그 백성들을 찾아내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이다. 죽으시기 전,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서나, 머무시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시는 역사가 일어난다. 물이 포도주가 되고, 다섯 덩어리의 떡과 물고기 두 마리가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온갖 질병도 고쳐내신다. 하나님의 나라가 열렸고,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자연적인 현상의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일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연단을 받을 때, 사십 년간이나 그들이 입었던 의복이 해지지 않았고 신발이 닳지를 않았다. 하늘에서 일용할 양식이 매일매일 내려왔고 때로는 메추라기 떼가 땅에 떨어져 죽어 고기를 포식하였다. 쓴 물이 단물로 변했고 반석에서 물이 솟아 나왔다.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이셨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며 산다면 생존 속에서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하심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모두가 초자연적이다. 자연적이지 않다. 원래는 자연도 초자연적인 본체의 뜻이 드러나신 현상인 것이다. 이 현상을 자연이라고 하고 이 자연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알고 보면 사람도 초자연적인 존재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이 아닌 것이 없다. 창세기 1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기록하였고 이어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라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잊고 있을 뿐이다. 자연을 누림은 불신앙일 뿐이다.

 

맺는 말

사람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삶의 목적이 아무리 타당성이 있어도 부귀, 영화, 명예, 지위 등 세상 것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희락과 평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혼이 누리는 나라인 것이다. 영혼이 안식을 누리면 몸도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본능적인 몸의 움직임도 있지만, 사람의 몸은 영혼의 지시를 받고 영혼은 성령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이러한 하나님 나라를 살려면 하나님 나라의 통치법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법은 기존에 사용하던 율법이나 양심이 아니다.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다. 선악 이분법이 아니다. 옳고 그름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비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새 법이다. 이 새 법은 새 언약이라고 하는 성령의 법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식이다.

무엇을 성취하려고 목적을 자신이 정해 놓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부터 하나님께 받아서 사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 자신도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것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면 생활의 필요도 채워진다. 생존은 덤으로 사는 것이다. 이때는 가난도, 부요함도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 속에 누림의 대상이 된다. 죽음에서도 자유하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자초하셨고 바울은 빌립보서 121절에서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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